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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칭찬의 놀이 동산, 싸이월드

싸이월드 속 아름다운 세상은 온통 착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니미와 처녀귀신 미니미가 문제시되고 거부당하는 세상. 토론장이 없는 세상. 싸이월드는 예쁘고 착한 아이가 늘 주인공인 동화책의 전형적 공간을 주조해낸다.

오유숙


지난 주 월요일(7월 19일) SBS 예능프로그램인 [야심만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연자로 나온 김C가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싸이월드 하냐고 물었더니 글쎄 무슨 놀이동산인 줄 아는 거예요’ 방청객을 비롯한 모든 출연자가 웃고 있는 가운데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강호동이 웃음거리가 된다. 다음카페를 ‘업소’로 착각하는 내용의 유머가 등장했던 [두사부일체]를 보는 듯 하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인 2001년 한국 사회가 다음카페를 하나의 공용어로 취급했던 것처럼, 2004년 지금 우리는 공용서 사전에 ’싸이질‘을 등록하려 한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경쟁하듯 앞 다투어 ‘싸이월드’를 심층 보도해왔다. 각종 브랜드와 기업이 서둘러 이곳에 자사의 미니홈피를 개설했으며,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미니홈피가 세간에 노출되며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각종 IT뉴스와 경제지를 시작으로 여러 주간지를 섭렵한 싸이월드는 지난 주 ‘한겨레21(518호)’ 표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해 8월 SK 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 합병된 싸이월드는 현재 네이트닷컴의 계열사이트로 분류되어 있다. 싸이월드의 폭발적인 성공에 힘입어 네이트닷컴은 야후를 제치고 사이트 순위 3위에 올랐으며(랭키닷컴 집계), 싸이월드는 한 달 매출 30억을 넘기며 연일 상승세의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싸이월드가 몰고 온 폭풍의 핵은 ‘미니홈피’이다. 개인 미디어의 한 종류인 미니홈피는 개인 홈페이지를 축소한 형태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원가입과 동시에 바로 제공되는 미니홈피는 그러나 아주 혁신적인 서비스도, 그렇다고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서비스도 아니었다. 즉 싸이월드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서비스로 지금의 위치에 온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인맥형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상호간의 협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촌맺기’ 기능은 온라인상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동의 망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나온 결과이다. 많은 전문가와 미디어는 그들의 이러한 노력이 성공했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놓고 있다.

법적 분쟁으로까지 치달았던 프리챌의 ‘미니홈’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거의 유사한 메뉴로 구성되었음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웃’이라는 싸이월드의 ‘일촌’과 비슷한 방식의 관계맺기 기능을 지원하는 네이버의 ‘블로그’는 전혀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망을 직조하며 현재 진화 중이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그들의 성공에 드리워진 그늘이 무엇인지 주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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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는 [칭찬합시다]나 [느낌표]와 같은 지극히 착한 오락프로그램이 성공해야만 한다고 믿는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다. 한국의 오락프로그램은 늘, 그리고 여전히 건전하다. 건전할 것을 그들은 강요받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각 방송사는 생존성 리얼리티 오락프로그램을 강화해왔다. 마지막으로 남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음모와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 출연자와,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가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이다. [백만장자와의 결혼], [대기업 CEO자리], [100만 달러]라는 서로 다른 목표가 있을 뿐,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헐뜯고 배신하는 행위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국내 각 방송사들 역시 이와 비슷한 구조의 오락프로그램을 선보였다. MBC의 [동거동락], [질풍노도 라이벌], SBS의 [실제상황 토요일-X맨을 찾아라], KBS의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MC서바이벌]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성 오락프로그램은 지극히 건전하다.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상금이 주어지지도 않지만, 돈 때문에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음모를 꾸밀 만큼 대담한 출연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프로그램이 제작된다면 예언하건대 상금의 50%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반드시 기탁한다는 각서를 써야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한국인이 건전하고 도덕적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전한 세상을 향한 집착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한다. 우리는 이 사회가 지나친 경쟁심과 물질만능주의로 얼룩졌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합류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변이 건전한 것, 선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싸이월드 속 아름다운 세상은 온통 착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변태 미니미와 처녀귀신 미니미가 문제시되고 거부당하는 세상. 토론장이 없는 세상. 싸이월드는 예쁘고 착한 아이가 늘 주인공인 동화책의 전형적 공간을 주조해낸다.

헨젤과 그레텔이 숲에서 찾은 과자로 만든 집, 그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 내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달콤한 꿈과 함께 망각되는 것처럼 싸이월드는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사실을 잊게 만든다. 그나마 많지 않은 공개 게시판(리플달기 형식)중 하나인 ‘싸이 poll’은 탄행정국과 김선일씨의 피살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행복한 소식은 어디 없나요’를 묻는다. 다른 어디보다 가장 한산한 정치 게시판 역시 답글 기능이 없어 반론 제기하기가 수월치 않으며 검색기능조차 지원되지 않는다. 싸이월드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은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는 눈을 감는 모순을 확인한다.



지금까지 싸이월드는 ‘감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표방해왔다.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진첩’과‘ 오에카키 기능의 ‘갤러리’, 작은 소품을 구입해 꾸미는 ‘미니룸’ 등, 이미지 중심 컨텐츠가 미니홈피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그에 따라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올리는 모블로그(Moblog-모바일 블로그) 기능이 강화되었고, 네이트, 네이트온과 연동하여 언제 어디서든 싸이월드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 속에서도 게시판의 낙후된 글쓰기 기능은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편집기능도 떨어지는 편인데다 무엇보다 좁은 면적이 문제가 된다. 더욱이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글을 넣을 수 있도록 줄간격이 지나치게 좁은 것도 글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결과를 낳았다. 생각을 개진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토론하기에는 ‘자격미달’이다.

결국 싸이월드가 표방하는 ‘감성의 공유’는 이미지로 완성될 수밖에 없다. Text는 이를 도와주는 왼손일 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미니홈피는 생각을 기록하는 곳이 아닌 일상을 담는 곳이 되었다. 생각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토론할 수는 있어도, 일상을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타인의 가족앨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놓고 감탄사 외의 무엇을 더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연스럽게 싸이월드는 칭찬하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칭찬하는 사회가 칭찬할 만한 사회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회원 수 800만을 넘긴 지금,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자신의 주인과 괴리되고 있다. 이제 회원들은 싸이질을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관리’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싸이월드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공간 속의 나와 실제의 나를 동일한 정체성으로 연결시키려던 그들의 생각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며 속살을 드러낸다. 그들의 아름답지만 연약한 세상은 작은 균열에도 쉽게 상처 받고 아파한다.

지금 회원들은 1촌맺기 기능을 더욱 세분화해 줄 것을 요구한다. 여러 종류의 1촌이 필요해진 까닭이다. 가족과 친구, 직장과 같은 그룹별 관리가 필요하고 각 그룹마다 전혀 다른 나를 선보여야한다. 그들에게 잘 보이도록 끊임없이 미니홈피는 화장을 한다. 칭찬받기 위해 나는 타인을 칭찬한다. 무의식적으로 찬사와 덕담을 내뱉는 내가 그 안에 있다. 더 이상 내가 아닌 나, 보이기 위한 내가 그 안에 있다. 이러한 가식이 싸이월드의 전면에 등장할 때, 지금의 신화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고 보면 싸이월드가 놀이동산이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다. 놀이동산에 놀러 갈 수는 있어도, 그 곳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