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사회부 정보보고)
[이명박 <여성과 글로벌 리더십> 특강 내용]
여성이 더 경쟁력을 가진 시대가 왔다. 나는 (과거엔) 공직생활을 한 적이 없다. 기업생활을 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기업이 좋은가, 시장이 좋은가, 국회의원이 좋은가를 묻는다. 공무원들도 시장이 어려운가 CEO가 어려운가를 묻는다. 공직자가 물으면 공직자가 쉽다고 말한다. 공직자는 국민이 세금을 갖다주니 쓰기만하면 되지 않는가. 기업인들에게는 공직자가 어렵다고 말해 반대로 얘기한다.
공직자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도 변화해야하고 노동자도 학교도 가정도 변화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변화를 해야 한다. 지금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변화하면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반걸음, 한 걸음 앞서 변화해야 리더가 될 수 있다.
환경과 문화를 나는 시정의 중심에 두고 있다. 현재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쟁의 원리 속에서도 선천적인 약자, 경쟁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 노약자 등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대일의 경쟁을 요구할 수는 없다. 현재 재래시장이 다 죽어가고 있다. 시장경쟁 원리 속에서도 약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재래시장을 키우고 있다. 현재 재래시장 환경개선을 하고 있다.
36만명 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1년에 1만 여명이 학교를 못 다니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못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갑자기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런 경우가 있다. 자식을 최소한 고등학교를 보내려 하지만 그런데도 만여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못가게 됐다. 5형제인데 막내인 나는 학교를 못가게 했다. 큰 형님 하나만 성공하면 되니 부모님이 다니지 말라고 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어머니를 찾아와서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어머님이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시골에는 야간 상업학교가 있으니 그곳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등록금이 없냐고 묻자 낮에 벌어 밤에 쓰면 된다고 했다. 수석하면 면제되고 1등하면 등록금 면제되니 시험이나 한 번 보게 해달라 했다. 그래서 3년 수석을 했다(일동 박수). 그 학교에서는 대학을 간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나 한 명이었다.
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달동네를 없애고 치매노인을 구제해야 하는지는 내가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체감을 하면서 시정을 돌보고 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갈 때가 없어서 달동네에 갈 수밖에 없었다. 청계천 8가에는 인력시장이 있었다. 아침에 일거리가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못했다. 사글세가 오르면 자꾸 위로 올라갔다.
도대체 국가가 발전하려면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잠자리를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길에는 부자가 많은데 부자에게 빼앗아 우리에게 나눠주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 입학을 준비 할 때 동대문에 있는 헌 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야할지 몰랐다.
길을 가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수를 하는 사람을 만나 따라서 접수했다(웃음).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했다. 나는 번호도 잊지 않는다. 61번이었다. 하느님이 도와서 어느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으로 나를 채용했다. 그러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 일을 잘 한다고 해서 상인들이 월급에 돈을 보태서 나를 도와줬다. 나중에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달동네 살면서 운동권이 됐다.
하지만 나는 좌파적 운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보수적인 운동을 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을 보아서는 좌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극복했다. 어머니의 기독교 신앙 덕분이었다. 이로써 나는 분별을 기를 수 있었다. 내란선동죄라는 죄목으로 선고를 받았다.
당시 내란을 선동할 마음은 없었다. 6개월 정도 있다가 나왔다. 이 때 졸업을 하면서 결심을 했다. 감옥을 갔다왔다는 경력을 갖고 이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자의 철학이 있는데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시를 볼 때 1차는 붙어도 2차는 붙지 못하고 계속 떨어졌다. 이렇게 생겨서 그런가했다(웃음). 중앙정보부에서 합격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다. 당시 현대에서 대학생을 뽑았다. 이 정도 회사라면 다닐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정주영 회장이 대학생 면접을 하다보니 이상한지 나에게 “꼭 올거냐”고 했다. 거의 합격통보였다. 하지만 또 떨어졌다. 그래서 청와대에 항의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데 한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폭력보다는 평화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대에 입사했다. 이후 중동 건설 붐으로 회사가 발전했다. 입사 12년만에 35살에 CEO가 됐다. 당시 신화라고 했다.
하지만 신화는 없다. 남이 볼 때에는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수많은 난관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얻은 것이다. 지금은 내가 공직자가 되었다. 내 꿈은 공직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직자는 관료주의 때문에 시대에 앞서나가지 못한다. 난 공직자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공직자가 바뀌면 지방 공직자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에 당선된 뒤 세계에서 배운 것을 현실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3년에 교장 선생님들을 모아놓고 서울의 대도시가 우리 이웃에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를 못본 척하면 되겠습니까. 그만 둔 학생들 찾아서 교장선생님이 추천하면 장학금을 주도록 했다. 현재 서울시에서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이 하이서울 장학금이다. 조건은 나중에 후배를 도우라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의지마저 꺾이면 성공할 수 없다. 도전은 실패할 수 있다. 그것도 여러 번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도 특권이다. 실패한다고 해서 좌절하고 실패할 수 없다. 취업이 안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포기이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그렇다. 그러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아직도 올바른 민주화 오지 않았고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지만 포기해서는 안된다. 시장이 되고 나서 서울을 환경의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청계천 복원이야말로 세상 어디에 내놓더라도 자랑스럽다. 가까운 일본 동경에서는 관련해 연구팀이 꾸려졌다. 프랑스에서는 이 변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심적인 변화를 가져올 지도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환경을 보존해서 후손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다. 노점상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이 노점상 출신이다.
나만큼 노동자와 소상인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정말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체험을 하면서 눈물 흘리고 잠을 못이뤘다. 22만명의 상인들이 협조를 했다. 상인들은 ‘이명박 시장은 그래도 우리의 말을 들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라며 나를 믿어 주었다. 그 분들이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이 리더십이다. 신뢰만이 최고의 사회적 자본이다. 만일 디지털 시대에 신뢰가 이뤄지지 않으면 비난이 난무하게 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나는 설득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경험과 삶의 가치관 경영의 목표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서울 시내 모든 대학들이 담을 허물기를 원한다. 이화여대는 여대라서 조금 곤란하지만 남학생들도 들어오고 좋지 않겠나(웃음). 초중고는 많이 덤을 허물었다. 용산기지도 모두 숲으로 만들자고 나는 주장하고 있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으면 변화를 시킬 수 있다.
문화의 변화는 음악당을 짓는 일이 아니다.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의 의식이 거기에 비례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는 노래방을 자주 가는데, 우리는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다. 문화는 산업이 될 수 있다.
문화비즈니스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다. 민족적 소질을 보아서는 우리가 중심이 될 수 있다. 문화의 허브가 될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10년 이후 변화를 위해 여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중지도에 야외음악당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람들은 배고픈 사람도 많다며 비난하는데 정부의 정책은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다. 문화 없아 잘살면 졸부가 될 뿐이다.
우리는 경제소득을 올리려는 노력만큼 문화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경찰 특진 시켜준다며 여관을 헤집고 다니니 관광객이 50% 떨어졌다. 이것은 성매매를 하기 위해 관광을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선진사회라 할 수 없다. 이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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