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극진가라데의 유래
극진 가라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화 (바람의 파이터) 의 주인공인 최배달씨가 창시한 것이다. 그는 14세때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항공대에 입대하면서 부터 가라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그는 와세다 대학 체육과에 입학하게 되며, 그당시 미야모토 무사시를 읽고 작가 요시까와 에이지를 만나 입산수도를 결심하게 되며, 약 2년 간의 입산수도를 마치고 전후 최초로 개최된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우승을 하면서 부터 일본의 기라성 같은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승부를 해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았으며, 또 다시 두 번째의 입산수도를 결심하게 되어 기요즈미 산으로 들어가 약 2년 간의 수도를 마치고 치바지방의 타야마 도살장에서 소와의 승부를 겨뤄 47마리의 소중 4마리를 그자리에서 즉사, 나머지는 소의 뿔을 꺽게된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군의 요청으로 가라데를 지도하게 되며, 미국 레슬링의 초청으로 시연 (데몬스트레이션)과 많은 목숨을 건 승부를 갖지만 단 한번도 패하지 않게 되며,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격투여행을 떠나 100여차례가 넘는 승부에서 무패를 기록하게 되고, 그떄 보여준 그의 승부와 시연을 본사람들은 그를 '신의 손'(God Hand)라 불렀다. 그리고 그는 세계 격투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동경에 대산 도장이라는 (지금은 일본내의 격투계의 전설적인 도장. 당시 입문자중 70%가 일주일을 견디지 못했고, 그때의 제자들이 지금 세계 격투계를 움직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름으로 처음으로 제자를 양성한다.
1964년 그 이름을 극진회관 (극진가라데)으로 바꾸며 세계 16개국 72개의 지부를 발촉하게 되며, 1969년 극진 최초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최강의 선수들을 배출한다. 그리고 1994년 4월 60세의 나이로 서거. 그의 유언에 따라 극진가라데의 2대 관장으로 문장규 (일본명:마쓰이 쇼케이) 가 임명되었으며, 현재 세계 120개국 1400만명의 제자들이 수련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부산에 정식으로 극진가라데 부산 본부 도장이 오픈하여 한국 무도계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본다.
최영의총재는 살아 생전에 이 말을 강조했다.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지 못하며 인정받지 못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며 신용이 없어 지면 존경받을 수 없다' 극진 가라데는 한국인 고 최영의 총재가 남기신 위대한 유산이며, 우리는 그의 무도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극진 가라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화 (바람의 파이터) 의 주인공인 최배달씨가 창시한 것이다. 그는 14세때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항공대에 입대하면서 부터 가라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그는 와세다 대학 체육과에 입학하게 되며, 그당시 미야모토 무사시를 읽고 작가 요시까와 에이지를 만나 입산수도를 결심하게 되며, 약 2년 간의 입산수도를 마치고 전후 최초로 개최된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우승을 하면서 부터 일본의 기라성 같은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승부를 해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았으며, 또 다시 두 번째의 입산수도를 결심하게 되어 기요즈미 산으로 들어가 약 2년 간의 수도를 마치고 치바지방의 타야마 도살장에서 소와의 승부를 겨뤄 47마리의 소중 4마리를 그자리에서 즉사, 나머지는 소의 뿔을 꺽게된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군의 요청으로 가라데를 지도하게 되며, 미국 레슬링의 초청으로 시연 (데몬스트레이션)과 많은 목숨을 건 승부를 갖지만 단 한번도 패하지 않게 되며,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격투여행을 떠나 100여차례가 넘는 승부에서 무패를 기록하게 되고, 그떄 보여준 그의 승부와 시연을 본사람들은 그를 '신의 손'(God Hand)라 불렀다. 그리고 그는 세계 격투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동경에 대산 도장이라는 (지금은 일본내의 격투계의 전설적인 도장. 당시 입문자중 70%가 일주일을 견디지 못했고, 그때의 제자들이 지금 세계 격투계를 움직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름으로 처음으로 제자를 양성한다.
1964년 그 이름을 극진회관 (극진가라데)으로 바꾸며 세계 16개국 72개의 지부를 발촉하게 되며, 1969년 극진 최초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최강의 선수들을 배출한다. 그리고 1994년 4월 60세의 나이로 서거. 그의 유언에 따라 극진가라데의 2대 관장으로 문장규 (일본명:마쓰이 쇼케이) 가 임명되었으며, 현재 세계 120개국 1400만명의 제자들이 수련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부산에 정식으로 극진가라데 부산 본부 도장이 오픈하여 한국 무도계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본다.
최영의총재는 살아 생전에 이 말을 강조했다.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지 못하며 인정받지 못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며 신용이 없어 지면 존경받을 수 없다' 극진 가라데는 한국인 고 최영의 총재가 남기신 위대한 유산이며, 우리는 그의 무도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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